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다.

책읽는인간 2015. 3. 19. 17:50




군인 출신이 대통령이던 시절 대학에 입학한 내가 처음 읽었던 <공산당선언>은 얼마 전 애석하게 작고하신 남경태 선생이 번역한 백산서당 영한대역 본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엄혹하던 시절이라 본명을 쓰지 않고 '남상일'이라는 필명으로 책을 내셨다. 

남 선생의 뜻은 "이왕 읽을 거 비교적 독일어 원문에 가까운 영문본으로 본연의 뜻을 정확히 읽으시라."라는 것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고른 동기는 "이왕 읽을 거 영어 공부도 같이 해보자."라는 것이었고, 애석하게도 그나마 영어본은 처음 몇 페이지 외에는 읽어보지도 않았다. 당시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는 나름 비장했다. 그것은 역사적 문헌을 학습한다는 의미를 넘어, 세계를 이해하고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지침을 얻기 위한 실천적 긴박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흘러 이 책을 다시 잡게 되었다. 그건 우연이었다. 처음으로 회사 전자도서관을 이용해보기로 마음먹고 책을 고르던 중 아무도 대출하지 않아 당장 빌릴 수 있는, 그래서 눈에 뜨인 책이었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20살 청년은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었다. 최근 홉스봄 3부작을 읽으며, 지금의 세계를 만들어낸 근원이 된 19세기에 대해 내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반성도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계기였다. 

호기심도 강하게 생겼다. 40대의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어렸던 20대에 대한 성찰과 회한? 역사적 문헌에 대한 지적이고 비판적인 재해석? 


우선 1872년 독일어판에서 엥겔스가 쓴 서문의 마지막 구절부터 눈에 띈다. "그러나 선언은 역사적 문헌이 되었으며, 우리에게는 더는 그것을 바꿀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1847년 말 처음 쓰고 이듬해 초에 출간된 이후 25년가량 지난 뒤, 엥겔스는 이 책이 불가피하게 담고 있는 몇 가지 낡은 지점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경험에서 얻은 새로운 역사적 교훈, 그리고 당시에는 실천적으로 유의미했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늘(1872년)은 의미가 없어진 낡은 부분들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고쳐 쓸 수 없다. 이미 <공산당선언>은 저자조차 손댈 수 없는 하나의 역사적 문헌이 되었다. 엥겔스는 서문에서 어떤 텍스트든 그것이 쓰인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줄 것을 주문하는 듯하다. 책이 나온 지 160년이 더 지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의 시작은 유명한 구절이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구 유럽의 모든 세력, 즉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귀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비밀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었다." 

책의 끝은 조금 더 유명하다. "지배계급들이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47년 말 유럽은 혁명 전야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 만인의 평등을 제도적으로 선언하는 혁명의 물결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프랑스인들은 공화국을 지키고 새로운 이념과 제도를 유럽 전역에 퍼뜨리고자 했지만, 지배세력이던 귀족과 성직자들의 반동은 강력했다. 공화국은 무너졌고 프랑스는 다시 왕이 지배하는 앙시앵 레짐으로 회귀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영국을 중심으로 기하급수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철도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강력한 엔진이 전 세계를 하나로 묶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새롭게 성장한 노동계급이 밀집된 도시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노동 시간이나 아동 노동에 대한 규제도, 환경오염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던 부르주아지는 이미 귀족들과 타협하고 권력을 분점하는 방법을 찾아 혁명 전선에서 이탈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에서 제삼 세계도 자유롭지 않았다. 전 세계가 부글부글 끓던 시절이었다. 

책이 출간된 직후인 1848년 2월, 책의 예언이 들어맞는 것처럼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은 유럽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그러나 역사의 모든 혁명이 그렇듯이 패배했다. 수많은 피를 흘리고 처절하게 진압됐다. 희망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간담이 서늘했던 부르주아지는 이제 혁명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기술(강력한 탄압뿐만 아니라 개량과 타협의 기술까지)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공황이 닥치고 1871년 파리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이 역시 몇 달 만에 엄청난 피를 흘리고 진압당했지만)이 있기 전까지, 이제 유럽에서 혁명은 존재하지 않을 무엇이었다.

서른 살의 젊은 혁명가 마르크스는 아마도 낙담했던 것 같다. 신념도, 열정도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혁명은 이제 그에게 당면한 과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독일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마르크스는 결국 영국으로 망명했고, 평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다. 영국 망명 시절 혁명가로서의 젊은 시절을 마감하고 집필하기 시작한 책이 바로 <자본론>이다. 


<공산당선언>은 우선 그 대담하고 선명하며 힘 있는 문체가 매우 인상적이다.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19세기 중반 유럽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살고 있다는 착각, 마르크스라는 신념에 찬 젊은 혁명가의 연설을 현장에서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19세기 중반 유럽을 지배하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그의 탁월하고 집요한 분석은 오늘 읽어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 책에서 일부 언급한 강령을 오늘날 수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실제 정책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점은 역설이다. 예를 들면 "높은 비율의 누진소득세를 적용한다."라든가 "공립학교에서 모든 어린이를 위한 무상교육을 시행한다. 교육은 산업적 생산과 결합한다."는 조항이 그렇다.

물론 그가 모든 것을 하지 않았다. <공산당선언>이 책의 절반을 할애한 그 시대 수많은 사회주의 조류에 대한 비판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사상이 시대가 낳은 수많은 다른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고 새롭게 집대성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사실 조금 지루하다. 당대에는 유명한 사람들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한물간 듣보잡(오웬이나 프루동에게는 죄송!)이 되었기 때문이다.

명백한 오류도 눈에 띈다. "기계가 모든 노동의 차이를 없애버리고 어디에서나 똑같이 낮은 수준으로 임금을 떨어뜨리는 것만큼 프롤레타리아 계급 내부의 이해관계와 생활 조건들은 점점 더 평준화된다." 조각조각 파편이 된 현대의 노동자들이 보기에는 조금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오류가 온전히 그의 탓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이 저지른 수많은 오류를 그에게 다 돌릴 수 없듯이.


그는 1883년 쓸쓸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신념과 이론 체계가 20세기의 정치와 사회, 지성사를 얼마나 크게 흔들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그리고 21세기의 초입인 2013년 <공산당선언> 초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를 한 마디로 평하자면(불가능해 보이지만)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그는 실천하는 철학가였다."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런던 못 가봤다. 사진만 봤다. ㅜㅜ)


"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


2015년 1월 14일 책읽는인간



공산당선언(백산고전대역 1)

저자
마르크스엥겔스 지음
출판사
백산서당 | 1989-08-1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마르크스주의 문헌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읽혀진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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