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봄을 봄.

책읽는인간 2015. 4. 27. 13:59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이름은 모두 아름답다. 하나하나 씹어가며 소리 내어 불러보면 더 아름답다. 그 넷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이름은 봄이다. 겨우 내내 이어진 흑백의 풍경이 끝나고 이제 아름다운 저마다의 색을 본다. 그래서 '봄'인가 보다. 

지구의 공전이 만들어낸,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이 엄청난 변화를 가슴으로 처음 느낀 건 3년 전이다. 일에 파묻힌 자는 볼 수 없다. 한 걸음 물러나면 거대한 우주가 보인다. 망막이 본 건 그전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망막에 맺힌 똑같은 전기신호가 두뇌와 심장에 새기는 자국은 사람마다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그래서 관찰은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누구의 눈인가에 따라 관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관찰의 이론적재성이다.

지금의 나는 계절의 변화를 밤하늘에서 읽는다. 좀 과장하자면 1주일 전 하늘과 오늘 하늘이 다르다. 화려하던 오리온자리는 서쪽 지평선 너머로 진다. 대신 거대한 사자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떠오른다. 나에게 봄을 알려주는 것은 이제 개나리나 진달래, 벚꽃이 아니라 사자자리, 또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르크투르스이다.

서쪽으로 저무는 오리온자리 (스카이트래커 / 캐논 37mm / ISO 1600 / 2분 10장)


봄 하늘 높이 떠오른 사자자리 / 목성 / M44 프레세페성단

(스카이트래커 / 캐논 17mm / ISO 1600 / 2분 10장)


M44 프레세페성단 (스카이트래커 / 캐논 200mm / ISO 1600 / 2분 10장)


사자자리 사진을 원본 크기로 보면 알기에바라는 별은 작은 동반성을 가진 쌍둥이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우주에는 별 두 개, 또는 세 개가 함께 맞물려 도는 쌍성이 아주 많다. 오히려 태양 같이 혼자 있는 별이 더 드물 정도이다. 

알기에바는 아랍어 어원의 뜻이 이마이다. 뜻과는 달리 사자의 갈기 부근에 있다. 주성의 밝기는 태양의 180배, 지름은 23배다. 동반성은 그보다 좀 어두워 밝기는 태양의 50배, 지름은 10배 정도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가까이 붙어 있지만, 이 두 별 사이의 거리는 태양에서 명왕성까지 거리의 4배가 넘는다. 두 별이 서로의 질량 중심을 공전하는 데는 500년 정도 걸린다. 두 별 모두 거성 단계에 돌입했다. 중심부 수소를 모두 태우고 이제 바깥쪽 수소들이 타면서 부풀어 오르고 있다. 나이는 20억 년쯤 됐으니, 태양보다 일찍 생을 마감하고 있는 셈이다. 질량이 태양의 2배라 연료를 더 빨리 소모하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6일 알기에바를 돌고 있는 행성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항성과의 거리는 지구-태양 사이의 거리와 비슷하나, 알기에바는 태양보다 훨씬 더 뜨거워서 생명체가 살기는 어려울 거라고 한다. 

사자의 꼬리에 있는 데네볼라는 아랍어로 '사자의 꼬리'라는 뜻이다. 참 이름 성의 없어 보인다. 하긴 백조자리의 백조 꼬리에 해당하는 별 데네브는 말 그대로 그냥 '꼬리'라는 뜻이라고 하니. 점성학에서는 불행과 불운의 상징이었다. 나이는 4억 년이 채 안 된 젊은 별이다. 자전 속도가 초속 128km로 태양의 60배나 된다. 주변에는 먼지 원반이 존재하는데, 허셜 우주망원경 관측 결과 이 원반은 데네볼라에서 39AU(1AU=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 떨어져 있다. 행성이 될 재료물질들이 있다는 뜻이다. 

프레세페성단은 지구(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산개성단이다. 사자자리 서쪽에 있는 게자리에 있고, 358개의 별로 이뤄져 있다. 황소자리의 알데바란 주변에 있는 히아데스성단과 함께 태어났는데 언제부터인가 제 갈길 가며 따로가 됐다. 맨눈으로는 그냥 희뿌옇게 보이는데 갈릴레이가 처음 망원경으로 관측하고 수십 개의 별무리라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나저나 캐논 렌즈들은 조리개 빛 갈라짐이 여덟 방향으로 나온다. 개성 있다고 해야 할까.)


사자자리에서 처녀자리로 이어지는 봄의 별자리에는 은하들이 가득하다. 은하들은 아주 작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은하들은 거대하지만, 너무 멀리 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천체는 우리 은하 안에 있다. 목성이나 금성은 우리 태양계의 식구들이고, 오리온 대성운, 플레이아데스 성단, 그리고 밤하늘을 덮고 있는 반짝이는 별은 모두 우리 은하 안에 있는 한 식구들이다. 반면 외부 은하들은 전혀 다르다. 우리 은하의 지름이 기껏해야 10만 광년 정도이고 보이는 별들은 대부분 몇백 광년 이내에 있는 가까운 별들이지만, 외부 은하들은 최소한 몇백만, 몇천만 광년, 멀게는 몇십억 광년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내 작은 망원경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엄청나게 크고 밝기 때문이다.  

레오트리플렛

(HEQ5 / ES80 / 캐논 1000D / ISO 1600 / 3분 20장)


작은 망원경으로 한 시야 안에 들어오는 이 세 개의 사자자리 은하들은 레오트리플렛이라고 한다. 사자의 꼬리인 데네볼라 오른쪽 아래 부근에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NGC 3628, M65, M66이다. NGC 3628의 별명은 햄버거 은하이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보시면 알 거다. 햄버거의 고기 패티는 가시광선을 흡수하는 가스구름 때문에 검게 보인다. 암흑대라고 하는데, 우리 은하에도 있다. 지름은 10만 광년으로 우리 은하와 크기가 비슷하고 거리는 3,5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지구에서 가장 옆면이 잘 보이는 은하 가운데 하나이다. M65와 M66은 전형적인 나선은하의 모습인데, 특히 M66은 가운데에 막대 모양이 뚜렷이 보인다. 막대나선은하다. 이 세 은하는 중력으로 서로 묶여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레오트리플릿을 촬영하는 동안 우연히 인공위성 하나가 세 은하의 한가운데를 관통해 지나갔다. 확대 사진에서 희미한 한 줄기 선으로 흔적을 남겼다. 

봄의 별자리에는 은하들이 흔하다. 올봄에는 봄나물 캐듯, 은하를 캐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