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를 후배와 함께 읽으며 토론이 잠시 있었다. 영국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가라는 주제였다.
그는 영국을 잘 아는 친구였고 그가 보고 들은 영국 정치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며 영국은 당연히 민주주의 국가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한 나의 논지는 민주주의를 단순히 정치제도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치제도의 완결성뿐만 아니라 경제, 복지, 교육, 문화, 언어, 통신, 교통의 자유와 기회균등, 계층(계급)간 이동의 유연성, 노동에 대한 존중, 더 나아가 가장 핵심인 "어떤 특권층도 인정하지 않는 공화주의 이념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고한 의식"까지, 모든 면을 포괄한 개념어가 바로 내가 보는 '민주주의'다.
좁혀 보자면 제도적 절차적 정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영국을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가당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층, 계급의 고착화 정도와 이동의 유연성, 문화 언어 교육의 기회균등과 사회통합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나는 아무리 상징성에 머문다 해도 특권을 가진 왕실과 귀족계급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민주주의는 어떤 특권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주권자로서 자유롭게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전제한다. 상징적 수준에서라도 특권계급을 인정하는 순간,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가 완비돼있다 해도,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뿌리깊은 의식과 문화가 온전히 공화주의 이념에 기반한 민주주의 국가 구성원들의 그것과 같을지 의문이다.
영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런 점에 대한 성찰은 새로운 계급 고착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본다. 아래는 이런 나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답하긴 참 쉽지 않다.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계급혁명(프랑스 대혁명) 이후 서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돼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근대 정치제도로 국한할 수도 있겠다. 사실 이 논의를 계속 진행시키다 보니 "영국이 민주주의 국가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용어는 주류 역사학자(정치학자)들에게는 다음의 세 혁명을 묶어 이르는 말이다. 1789년 7월 프랑스 대혁명, 1830년 7월 혁명, 그리고 1848년 2월 혁명. 각각의 사건과 배경은 다 다르지만, 큰 흐름에서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절대왕권(상징적 수준의 왕권을 포함해)을 폐지하고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 기초해 공화국을 수립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그 이상처럼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여성은 여전히 투표권이 없었고, 새롭게 권력을 장악한 부르주아 계급은 아동을 포함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의 착취를 고착화시켰으며, (혁명전쟁 과정에서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모든' 인간에서 아이티를 비롯한 식민지 흑인 노예들은 제외였다.
공화국 수립과 산업혁명의 물결이 프랑스를 휩쓸던 1871년 3월, 파리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프로이센의 침공에 무력하게 타협하려던 공화국 정부(베르사유 정부)에 반발해 파리 시민들은 독자적 투표를 통해 코뮌위원회를 결성한다. 코뮌은 파리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72일간 파리를 장악했고, 시민들은 마르세유를 비롯한 프랑스의 각 도시에 기구를 이용한 삐라를 뿌려 독자적 코뮌 결성을 촉구한다. 그들이 꿈꾸던 프랑스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 즉 코뮌 연합체였다.
코뮌이 당시 선포한 정책은 지금 봐도 매우 파격적이다. 이들이 내세운 정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시민생활의 자주적 관리"였다. 징병제와 상비군 폐지, 인민에 의한 국민군 설치, 집세 미납분 일시 연기, 관리봉급 상한선 결정, 종교재산의 국유화, 여성 투표권 보장, 자본가의 일방적 횡포를 막기 위한 노동조합 보장, 아동 노동 제한, 10시간 노동제 실시, 부채 지급유예와 이자 폐기, 노동자 최저생활 보장이다.
상비군 폐지와 인민에 의한 국민군 설치는 국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설치된 관료조직이 결국은 그 속성상 자유로운 개인 위에 군림할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군대는 물론 경찰 조직도 폐지했다. 대신 시민 자치조직인 치안위원회를 결성해 시민 누구나가 일종의 순번제 경찰(치안 당번) 역할을 하게 했다. (80년 5월 광주가 계엄군 철수 이후 고립된 상황에서 시민 자치조직에 의해 치안이 유지되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가 실현됐던 점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래서 5월 광주를 코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당시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파격일 뿐만 아니라, 오늘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혁신적이다.
72일간 유지되던 파리 코뮌은 고립 상태에서 정부군에 의해 무참히 진압당했다. 시가전이 벌어진 피의 일주일 동안 3만 명이 학살당했고, 수만 명이 처형되거나 유배 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중앙정부는 파리의 자치권을 이후 100년 넘게 박탈했다. 파리 코뮌은 그렇게 프랑스 혁명사에서 잊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근대가 단 한 번도 달성된 적이 없다고 내가 생각하듯이) 민주주의는 아직 달성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권 분립, 보통선거, 대의제는 어쩌면 한계를 정하지 않은 궁극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길목에서, 혁명에 승리한 특정 계급이 그 이상의 분출하는 요구(파리 코뮌이 꿈꾸던)를 막기 위해 박제화시켜 놓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인 것처럼 상징조작을 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코뮌이 꿈꾸던 그 자유공동체 이념을 언제부터인가 민주주의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상한선을 그어놓고 여기까지만 민주주의라고 믿게 된 것은 아닌지. 물론 이런 선을 긋게 된 것이 단지 부르주아 계급(그리고 그들의 이념이 충실히 반영된 주류 정치학)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국가의 폐지와 진정한 공동체라는 코뮌의 이념을 지향하던 (또는 지향할 것으로 믿었던) 현실 사회주의의 배반과 몰락도 한몫했을 것이다.
"영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 질문을 폐기하고 거둬들이려 한다. 정치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지만, 추론하건대 주류 정치학(비교 정치학)의 관점에서 영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주류정치학의 관점에서 "영국이 한국보다 민주주의를 잘 실현하고 있는 국가인가?"는 옳은 질문이지만, "영국이 민주주의 국가인가?"는 의미가 없는 그른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혁명에서 승리한 부르주아 계급이 세계를 자신의 질서대로 구축한 뒤, 그 자본주의 질서의 영속화를 위해 선택하고 타협한 정치제도이다. 그 '민주주의'는 어쩌면 박제화된, 거세된 민주주의일지 모른다.
최저생활 보장, 이자 폐기와 부채 지급유예, 집세 유예 같은 정책이 담고 있던 이념은 요즘 유행하는 말인 경제 민주화와 맞닿아 있다. 경제 민주화가 시대적 요청으로 떠오른 이유는 분명하다. 한계에 부딪힌 '민주주의'의 한계선을 두드리고 의미를 확장하는 담론이기 때문이다. 이 토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통시적 시각에서 다시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끝으로 허버트 마르쿠제의 다음 글을 새겨 읽어주시면 어떨지?
"모든 혁명은 하나의 지배집단을 다른 지배집단으로 대치하려는 의식적 노력이었다. 그러나 모든 혁명은 목표를 넘어서는 힘, 지배와 착취의 근절을 향하여 노력하는 힘을 풀어놓았다. 그러한 힘들이 쉽사리 패배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설명을 요구한다. 권력의 상태도, 생산력의 미숙성도, 계급의식의 부재도 적절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모든 혁명에는 지배에 대한 투쟁이 승리할 만한 역사적 계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계기는 언제나 헛되이 지나가 버렸다. 세력의 미숙이나 불균형이라는 이유의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자기 패배의 요소가 혁명의 역할 속에 포함된 듯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혁명은 배반당한 혁명이다."
2014년 9월 11일 책읽는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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