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자리 유성우>
사진에 별똥별 하나가 잡혔다. 중앙 오른쪽 위에 오리온자리가 보이고, 그 아랫쪽 지평선 가까이 큰개자리 시리우스가 떠올랐다. 왼쪽 하단의 밝은 별은 작은개자리 프로키온이다. 사진을 두 시간 돌렸는데 또렷하게 잡힌 별똥별은 이 녀석 하나뿐이다. 하필 그때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추정되는 강한 잡광이 들어왔다. 사진 버린 줄 알았는데, 보정해 놓고 보니 마치 오로라같기도 하다.
<동쪽 하늘 일주>
같은 구도에서 촬영한 일주 사진이다. 지구가 한 시간에 15도씩 돌고 있다는 잊기 쉬운 단순한 진리를 이 사진이 다시 알려준다.
지난 주말 아들과 동네 사는 그의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아빠, 이렇게 넷이서 겨울 캠핑을 떠났다. 한겨울 산속의 추위는 매서웠지만, 텐트 치고 잠자리를 만드는 내내 땀이 났다. 친구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이 노가다 일을 왜 사서 하고 있을까요?"
그런 추위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냥 신났다. 눈 오는 날 강아지들처럼 산길 여기저기를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이 노가다 일은 이래서 하는 거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별을 보여주었다. 바지만 세 벌, 웃옷 5벌에 핫팩과 양말 핫팩까지 중무장시킨 채 눈 쌓인 넓은 공터로 데리고 나갔다. 별이 몇 개 보이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다 화를 낸다. 저걸 어떻게 다 세느냐고.
텐트로 돌아온 아이들이 귤 까먹으며 책(요즘은 "WHY?"에 푹 빠져 있다. 내가 읽어도 재미있다.)을 읽다가 말했다. "아빠. 눈이 저절로 감겨."
드디어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들의 시간이다.
이날 캠핑의 목적은 쌍둥이자리 유성우 관측이다. 쌍둥이자리 유성우는 매년 이맘때쯤 지구가 소행성 Phaeton이 남긴 부스러기 지역을 지나갈 때 볼 수 있다. 올해 극대기는 12월 14일 밤 9시지만 불가피하게 하루 당겨 진을 쳤다.
하늘은 청명하고, 달도 없는 밤이다. 사진기를 걸어 놓고 두 40대 아저씨는 고량주로 추위를 달래며 하늘을 본다. 10시가 넘어가자 별똥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묵한 두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극대기 이상적 관측지에서는 분당 120개를 본다는데, 우리는 10분에 하나 정도 본 것 같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 책 이야기, 별 이야기를 나누며, 이따금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리를 질렀다. 화롯대 위에 끓고 있는 어묵탕은 그릇에서 5분이면 냉탕이다. 알코올 비중 40%가 넘는 고량주조차 얼어붙는 맹추위다.
술병이 반쯤 비워질 무렵 공학박사이자 대기업 연구원인 그가 입을 열었다.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어요. 꿈꾸던 삶은 아니었는데..." 학창시절 운동(Movement)도 하고 산도 타고 별도 보던 사람이다. 힘든가 보다. 회사 쪽은 쳐다 보기도 싫어한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진심으로 답해주었다.
그를 천체망원경 앞으로 데려갔다. 250만 년 전에 출발한 빛, 안드로메다은하를 보여주었다. 자정쯤 산 위로 떠오른 목성의 줄무니와 그 위성들도, 이중성단과 좀생이별도 보여주었다. 아주 좋아했다. "인생 캠핑 중 하나에 올려야겠네요."
40대는 힘든가 보다. 좋았던 지난 시절에 대한 회한, 닥칠 미래가 주는 중압감과 불안감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샌드위치가 되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좋았던 시절은 있을지 몰라도, 당시 시점에서 인생 어디 쉬웠던 적 있었던가.
후배 하나가 썼듯 "고통을 잊기 위해" 누구는 술을 마시고, 누구는 목공을 하고, 누구는 책을 잡고, 누구는 별을 본다. 정말 추운 계절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몰입할 수가 없다. 별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흥미롭다고 느끼지만, 마음을 온전히 다 줄 수가 없다. 내 마음 한편에 이것은 '고통을 잊기 위한 수단'이라는, 몰입을 방해하는 저항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저 엄청나게 많은 별과 우주를 보며 겸허함을 배우지만, 마음 속 별 하나에 대한 집착은 못 버리다니. 별에게 미안함마저 든다.
2014년 12월 15일 책읽는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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