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

카센터 이야기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환할 때가 지났다. 보통 1만 Km마다 갈아주었는데, 이번에는 귀찮아서 1만5천 Km 넘게 탔다. 별 보는 취미가 생긴 뒤 빛 공해가 없는 먼 곳을 찾아다니면서 마일리지가 부쩍 늘었다. 이번에는 엔진오일을 교환하면서 브레이크액도 함께 갈아줘야 한다. 동네에서 교환하면 어떤 제품을 쓰는지 알기도 쉽지 않고, 가격도 들쭉날쭉하다. 그래서 늘 그랬듯 인터넷으로 모든 부품을 주문했다. 엔진오일, 오일필터, 에어필터, 그리고 브레이크액까지. 이제 어디에 가서 교환할 것인지만 결정하면 된다.

회사 앞 공업사에 전화해 봤다. 비싸다. 다른 동네를 물색했다. 회사에서 멀지 않으면서 공업사들이 비교적 많이 몰려 있고 가격도 저렴한 동네는 망원동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망원동 카센터'라고 검색어를 쳐넣었다. 그러다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주변에 대기업 정비소만 9곳 

“동네 카센터엔 단골도 안와요”

2013년 5월 8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뉴현대자동차공업사 전성표 사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손님을 기다리며 빈 가게를 지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30년 정비공’ 전성표씨 흔들리는 꿈


‘부품액 465만8000원, 공임 173만5500원, 부가세 17만3250원, 합계 656만6750원.’


서울 마포구 망원동 ‘뉴현대자동차공업사’ 사장 전성표(46)씨가 지난달 30일 기자에게 보여준 ‘4월 매출액’ 기록이다. 부품 업체에 줘야 할 돈(465만8000원)을 빼고 나니 손에 들어오는 돈은 190만8750원이다. “가게세 내고, 세금 내고 하면…생각해 볼 것도 없이 마이너스에요.”


쿠폰·할인혜택 대기업 정비소는 ‘북적’

전씨 가게 손님 한명 없을때 ‘부지기수’

매달 적자에 허덕…아이들 보험도 해지

‘요일제 이용 차량 할인’ 제시했지만 허사

“무상수리기간 끝나면 단골 돌아올까요”


매달 5일이 임대료 주는 날인데, 3월치도 4월29일에야 줬다. 전씨는 얼마 전 아이들 학자금 보험 2개를 깼다. 중3·중1짜리 아이들 영어·수학 학원은 이미 지난해 끊었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요, 한숨 쉬면 뭘 해요.” 전씨가 애써 웃어 보였다. 기름때 낀 손톱, 두 손에 갈색 흉터로 남은 기름 독은 전씨의 삶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던 1982년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뒤 줄곧 자동차와 함께 해왔다. “비포장 도로에 퍼져있던 버스를 척척 고쳐내는 정비사가 그렇게 멋져보이더라고요.” 자동차 엔진보링 공장 근무를 시작으로, 군대 자동차 정비병을 거쳐, 제대한 뒤 곧장 카센터 종업원으로 취직했다.

전씨가 어엿한 카센터 사장님이 된 건 1997년이었다. 고향인 강원도 횡성을 떠난 지 16년 만이었다. “이름이 카센터지, 서울 은평구 신사동 빈 공터에 지은 보증금 1000만원짜리 허름한 가건물이었어요. 거저나 다름 없이 인수했죠.” 가게 한켠에서 밥을 끓여먹고 살았지만 전씨에겐 그저 “재밌던 시절”이었다. “하루에 열댓명씩 손님이 들었어요. 부품값을 다 주고서도 한 달에 500만원은 벌었으니까요.” 전씨는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렸다.

“장사가 좀 된다 싶으니까 (땅)주인이 직접 카센터를 하겠다고 나가라더군요.” 신사동 시절을 접고 마포구 연남동을 거쳐 지금의 망원동으로 옮겨 온 이유다. 전씨는 이후 가게 주변 연세대학교 등을 직접 발품을 팔며 고객을 유치했고, 단골이 된 교수·교직원들과 “형, 동생 할 정도”로 가까워지기도 했다. 오랜 단골 중 한 사람은 성실한 전씨가 마음에 든다며, 자기집 한 켠을 시세보다 훨씬 싸게 내주기도 했다.


“그런 좋은 시절도 이젠 다 옛날 얘기에요.” 요즘 전씨의 가게엔 손님이 들지 않는 날이 더 많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전씨는 워크베이(수리 공간) 하나짜리 가게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어제도 엔진오일 하나, 에어컨 필터 하나 교환한 게 다예요. 타이밍벨트(엔진에서 생기는 힘을 다른 기관으로 전달하는 장치)나 디스크 삼발이(엔진과 미션의 동력차단 장치) 교체를 해야 공임이라도 좀 받는데, 손님 자체가 없는 걸요.” 마포구청과 협조해 요일제 이용 차량에 대해 2% 이용료 할인 혜택을 주고, 장애인 차량 무상점검 캠페인에 참여하며 고객 기반을 넓히려고 애써봤으나 허사였다.

일감이 없는 날이면 전씨는 동네를 한바퀴 돌곤 한다. 전씨의 가게 반경 1㎞ 안엔 현대차 블루핸즈 등 대기업과 손잡은 자동차 정비업소가 9개나 된다. 그들 간판 아래엔 20명이 넘는 손님들이 대기하는 날도 많다. “새 차 뽑은 사람들은 전부 그리 간다고 보면 돼요. 엔진오일 무료 교환 쿠폰 주고 제휴카드 할인되죠, 게다가 무상 수리 기간까지 길어졌는데 누가 다른 데 가겠어요?” 단골마저 떨어져 나간다. “성표야 미안하다. 쿠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그 말을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단다. “보증기간이 끝나면 그 손님이 돌아올까요?” 전씨는 속이 끓는다.

그가 ‘뉴현대자동차공업사’로 간판을 바꿔 단 것도 혹시나 ‘현대 효과’를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솔직히 대기업 가맹점으로 전환하면 나아질까 싶어 알아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일정 규모가 안 돼 그것도 안 된다더군요.” 전씨의 동료는 이달 15일 카센터 문을 닫는다. “맘 같아선 저도 가게 문을 닫고 싶죠. 하지만 애들은 한창 클 나이고…다른 재주도 없으니 별 수 있나요.” 한 때 전씨의 꿈은 알뜰살뜰 돈을 모아 3층짜리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1층엔 카센터, 2층은 사무실 임대 내주고, 3층은 살림집으로 쓰면 더 바랄 게 없을 것만 같았죠.” 전씨는 오늘도 꿈에서 또 한 발자국 멀어지고 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기사를 읽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기사 속 주인공 전 씨는 46살. 의욕과 경험, 체력과 경륜이 균형을 이루며 어떤 일이든 가장 이상적으로 해낼 수 있는 나이. 그가 어떤 분야에 있든 한창 전성기를 통과하고 있을 나이. 어떤 일이 다가오더라도 이전 어느 때보다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을 나이.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앞이 잘 안 보이는 힘겨운 나이. 그리고 곧 다가오는 나의 나이.

이 가게를 가고 싶어졌다. 가게 이름으로 검색했더니 전화번호가 하나 보인다.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는 사람 목소리가 아닌 팩스 머신의 날카로운 기계음이다. 시간을 두고 몇 차례 걸어 봤지만 마찬가지이다. 하긴 저 기사가 벌써 2년 전이다. 그 사이 전 씨의 '뉴현대자동차공업사'는 그의 동료 가게처럼 이미 문을 닫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다른 가게를 찾아갔다. 퇴근길에 들른 용산의 작은 카센터였다. 저녁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손님은 내가 유일했다.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던 40대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내 차를 맞았다. 그가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이다. 그는 말이 별로 없다. 묵묵히 할 일을 한다. 조금 지켜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보았다.

"사장님. 요즘 동네 카센터들 힘들죠?"

"그렇죠. 경기가 없죠."

그리고는 또 말이 없다. 과묵한 두 남자 사이에 들리는 소리는 공구 부딪히는 소음뿐이다. 

또 말을 붙였다. 마치 말 없는 취재원에게 질문을 던지는 기자의 심정이다. 

"왜 경기가 없어요? 대기업 프랜차이즈 때문이에요?"

이 질문에 그는 말문이 터졌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참고 있었다는 듯.


"그것도 그거지만 우선 차가 옛날보다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타이밍벨트였잖아요. 요즘은 다 체인으로 바뀌었어요. 교환할 일이 없어요. 파워스티어링도 예전에는 다 오일이어서 교환했잖아요. 요즘은 전기모터로 나와요. 손님들 눈도 높아졌어요. 소모품은 다 인터넷에서 사와요. 여기 종류별로 재고를 쌓아둘 수 없으니 우린 그때그때 대리점에 주문해야 하는데, 배달비 1천 원이라도 붙죠. 인터넷 가격에 맞추기 어려워요. 

보증기간은 더 길어졌죠. 차는 자꾸 좋아지죠. 그러니까 일감이 없어지죠. 이제 전기차로 다 바뀌면 어떻게 돼요? 일 없어져요. 주유소들도 전부 문 닫아야죠.

대기업 프랜차이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예요. 매출액의 얼마씩 꼬박꼬박 내야 하죠. 때만 되면 인테리어 다 바꿔줘야 하죠. 본사 담당자 바뀌면 인테리어부터 고치려고 들어요. 인테리어도 자기 건물이면 바꾸죠. 그런데 세 얻어 가게 하면 건물주인 허락 받아야죠. 프랜차이즈 하려면 직원도 경리까지 4명은 두어야죠. 돈 벌어서 그렇게 내고 나면 남는 거 없어요."


동네 카센터가 어려워진 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가, 또는 수많은 "그"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손이 많이 가지 않도록 자동차를 잘 만든 대기업의 잘못도 아니다.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잘못도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닐지 모른다. 그저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환경 변화의 결과일지 모른다. 마치 태풍이나 지진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처럼. 

그러나 바로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천천히 고통받거나 낙오한다. 그리고 바로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 정부이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조례를 두고, "실효성도 없으면서 소비자들만 불편하게 만드는 탁상행정"이라고 비난하는 기사들을 종종 접한다. 아마 소비자의 입장에 있는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그런 비난에 공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태풍이 불면 국가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피해를 복구하고 돕고 예방할 책임이 있다.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의 변화가 누군가에게 가하는 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인 이유는, 나도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서로가 서로에게 보험 역할을 해주기로 약속할 능력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류의 진보는 그런 약속의 확대, 즉 힘이 모든 걸 결정하지 않도록 국가가 자기 할 일을 넓히는 과정이자, 시민의 권리는 물론 의무까지 확대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 역할을 하지 않는 국가는 필요 없다.


브레이크액 교환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타이어 4개를 모두 빼내고 새 브레이크액을 조금씩 부어가며 운전석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쓰던 액을 바퀴 쪽에서 빼내야 한다. 엔진오일 교환과 브레이크액 교환에 40여 분 정도 걸렸다. 작업을 모두 끝낸 뒤, 그는 서비스로 타이어 공기압을 채우고 워셔액을 보충해준 뒤 엔진룸 청소도 해주었다. 

나는 4만 원을 냈다.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에게 "사진 찍어 가게 홍보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말없이 웃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게를 떠났다.



내가 다녀온 가게는 서울 용산구 용문동에 있는 <용문 카센터>이다. 주소는 용산구 새창로 103. 전화번호는 02) 712-7609. 

이 글을 보시는 분 가운데 아직 단골이 없고 집이 그리 멀지 않다면 이 가게를 이용해주시기 바란다. 실력 있고 꼼꼼하고 정비가격도 저렴하다.



'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사람 이야기 : 굴드 vs 이용마  (0) 2016.09.21
한 무신론자의 죽음 - 올리버 색스를 추모하며  (3) 2015.08.31
진화의 본질  (0) 2015.05.04
강원도 양구군, 16년 전 기억.  (2) 2015.04.14
별똥별  (0) 2015.03.20
세기의 대결  (0) 2015.03.19
육체  (0) 201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