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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두 사람 이야기 : 굴드 vs 이용마

<두 사람 이야기 : 굴드 vs 이용마>


1. 


스티븐 제이 굴드라는 고생물학자이자 진화학자가 있다. 그는 1941년 생,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와 동갑내기였다. 미국인 굴드와 영국인 도킨스는 평생의 라이벌이었다. 거대한 진화 담론에서부터 야구와 크리켓 얘기까지 사사건건 논쟁을 벌였다.

그는 통계 전문가였다. 그는 진화가 진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진화는 단순한 생명에서 인간으로 뚜렷한 방향성을 가진 변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통계가 주는 착각일 뿐이다. 생명체는 더 단순한 방향으로도, 더 복잡한 방향으로도 무작위로 변화한다. 그러나 생명이 처음에 가장 단순한 단세포 생물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왼쪽 방향에는 벽이 존재한다. 결국 분포 그래프는 오른쪽, 즉 더 복잡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다. 

야구광이던 그는 이런 이론을 이용해, 프로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는지에 대한 훌륭한 과학적 설명까지 내놓았다. (이걸 보고 영국인 도킨스는 웬 알아듣지도 못할 야구 얘기냐고 불평했다. 내가 크리켓 얘기하면 댁은 좋겠냐고. ;;)


1982년 41살의 나이에 그는 복막 중피종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렸다. 의사의 진단을 받고 그는 과학자답게 도서관에 틀어 박혀 그의 병에 대한 논문과 자료들을 탐구했다. 통계는 암울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의 50%는 8개월 이내에 사망한다는 것이었다. (30여 년 전 의학 수준으로는 다루기 매우 까다로운 병이었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 속도로 미뤄볼 때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믿는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전문가로서 그는 이 통계의 헛점을 파고들어 찾아냈다. 환자의 절반은 8개월을 기점으로 왼쪽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8개월을 기점으로 오른쪽으로 넓게 분포했다. 오른쪽 꼬리는 매우 길게 뻗어나갔다. 8개월을 넘기면 상당수가 꽤 오래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이 오른쪽 끝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끈질기게 병과 싸웠다.


그는 병을 이겨냈다. 그리고 3년 뒤 그는 <디스커버>지에 <중간값은 메시지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에세이를 기고했다. 8개월이라는 중간값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 안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 합병증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포함돼있다. 그러나 굴드는 젊었고, 무엇보다도 의지가 강했다.
그는 20년을 더 살았다. 20년 동안 그는 뛰어난 연구는 물론 무려 20권 가까운 책을 펴냈다. 하나같이 명저로 평가받는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진화론자, 고생물학자로 남았다.



2. 

나의 MBC 선배 기자 한 명이 복막 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40대 후반이다. 그는 2012년 170일 파업을 이끌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고, 해고되었다. 사법부는 1심과 2심 모두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상고했고 대법원은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나에게는 그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다. 벌써 18년 전 일이다. 그는 기사로 검사 한 명을 작살냈다. 정치적으로 쟁점이 될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고소 사건 하나를 엉터리로 처리하는 바람에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검사는 반성하고 일을 바로잡기는 커녕,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고소 사건 당사자를 괴롭혔다. 
당시 나는 그가 출입하던 검찰청의 후임 출입기자였다. 그가 소송을 준비하는 모습을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잊혀져가던 이 재판에서 그는 법전을 뒤지며 끈질기게 싸웠다. 두 똘끼끼리 맞붙은, 아니 권력과 언론의 자유가 맞붙은, 비열함과 진실이 맞붙은 이 싸움에서 그는 승리했다. 진실이 승리했다. 검사는 옷을 벗었다.


그가 해고된지 벌써 4년이 넘었다. 그동안에도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사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팟캐스트 방송을 했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박사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내가 아는 그라면 안 봐도 뻔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병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 병에 대한 자료를 뒤지며 공부하고 있을 거다. 그는 태생적인 탐구자이자 똘끼 있는 독사다.


과학자 굴드는 끈질겼고 젊었다. 
해직 기자 이용마도 끈질기고 젊다. 
굴드가 그랬듯이, 
이용마 역시 탐구 정신과 의지력으로 병을 이겨낼 것이다.
18년 전 끈질긴 싸움으로 진실을 빛냈듯이, 
2016년 그는 끈질긴 싸움으로 자신을 빛낼 것이다. 
그리고 꼭 MBC로 복귀해, 수많은 역사를 일궈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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