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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진화의 본질

대단한 야구팬은 아니지만 야구의 매력을 충분히 즐길 정도의 애정과 지식은 있다. 한때 열정적으로 야구를 취재하던 야구기자이기도 했다. 야구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통계 분포를 보여주는 거시 생태계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스포츠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30년 넘게 한 팀만 응원했다. 개막전 역전 만루 홈런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대학 다닐 때 두 차례 우승으로 반짝 기쁨도 주었다. 그런데 그게 20년도 더 전이다.


아들 녀석이 야구에 빠졌다. 녀석은 넥센 히어로즈 팬이다. "원래 아들은 아빠 응원하는 팀 같이 응원하는 거."라며 여러 차례 전향(?)을 권유했지만, 넥센의 선수별 응원가를 모두 외워 따라 부르는 녀석 앞에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지난 주말, 나의 팀과 그의 팀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맞붙었다. 둘은 잠실 야구장에 손 붙잡고 갔다. 그리고 약속했다. "오늘 이기는 팀으로 정리하기!" 

나의 33년 외사랑은 녀석의 팀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날뿐 아니라 3연전 모두.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녀석의 저 의기양양함을 보라.


새 팀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점점 알아갈수록 없던 애정도 생긴다. (하긴 야구팀 뿐만 아니라 뭐든 안 그렇겠나.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해야만 하는 명분인 것을.) 어린이날 선물로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켜 줬다. 내일은 둘이 손잡고 처음으로 목동 야구장에 간다.

떠나가는 세대는 늘 새로운 세대에게 질 수밖에 없다. 아니 져야만 한다. 그것이 세상의 진실이고, 수십억 년 이어진 생명 진화의 본질이다. 그걸 거부하면 꼰대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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